나는 성인이 된 후에도 청소년 문학을 즐겨 읽어왔다. 책의 두께가 너무 두껍지 않아서 금방 읽을 수 있고, 내용도 재밌을 뿐 아니라 읽기 쉽게 쓰여있어서 좋아한다. 이런 점 때문에 내용이 너무 가볍다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초등학교 때 처음 읽었던 한 청소년 문학도서는 지금까지도 인생 도서로 꼽기도 하고, 학창시절 내내 나의 꿈이었던 교사를 꿈꾸게 한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약 이틀에 걸쳐 읽은 이종산 작가님의 <도서부종이접기클럽>이라는 책은 최근에 SNS에서 청소년 문학 추천 포스트를 보고 흥미가 생겨 읽게 되었다. 제목이 직관적이기는 하지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쉽게 짐작하기 어려웠다. 나는 깊이 생각하기 보다는 첫 장을 넘겨 바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의 줄거리 (스포주의)
이 책의 줄거리는 이렇다. 세연, 모모, 소라 이 세 명의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은 학교 도서부이자 종이접기 클럽의 부원들이다. 종이접기 클럽은 어느 날 도서실에 종이접기 책을 들고와 종이접기를 하는 소라의 모습에 흥미를 가진 나머지 두 친구가 종이접기에 합세하게 되며 탄생한 모임이다. 세 친구는 학교가 끝나면 도서실에 모여 종이접기를 하거나, 각자 분담하고 있는 도서부원으로서의 일을 한다.
창 밖에 비가 내리던 어느 날, 괴담을 좋아하는 모모는 두 친구들에게 오랫동안 학교에서 떠도는 도서실 괴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괴담의 내용인 즉슨, 학교 앞 사당에 담력 훈련을 하러 갔던 선배들 중 사당까지 들어갔다 온 한 선배가 도서실에 친구들과 숨어있다가 귀신을 마주치고 죽었다는 것이었다. 이미 대충은 알고 있는 이야기였음에도 괜히 으스스한 느낌을 받던 중, 번쩍하더니 도서실이 정전된다. 다행히 소라가 챙겨둔 양초와 성냥이 있어 가볍게 불은 밝힐 수 있었다. 그런데 머지않아 위층에서 여럿이 뛰어다니는 듯한 발소리가 나고 도서실에 남겠다는 소라를 제외한 모모와 세연은 올라가 본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지 못한 둘은 각자 복도의 반대 방향으로 가서 찾아보기로 한다. 그렇게 혼자 복도를 걷던 세연은 검정색 한복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여자와 마주한다. 그녀는 세연에게 종이학 하나를 접어줄 수 있냐는 부탁을 한다. 종이학을 접다 왔기에 마침 종이를 가지고 있던 세연은 다소 겁 먹었지만, 그런 마음을 잠재우기도 할 겸 종이접기를 시작한다. 다 접은 종이학을 건네주자 그녀는 종이학에 불을 붙인 후 창문에 타버린 종이학을 올려 잔해를 바람에 날렸다. 여자의 "찾았다"라는 음성에 창밖을 내다보자 나무 아래에 세연이 정전 직전 보았던 여학생 귀신이 있었다. 여자를 다시 보려고 뒤를 돌았지만 여자는 사라진 후였다. 창 밖의 여학생도 마찬가지였다. 무서워진 세연은 도서실로 돌아가려 하지만, 원래의 교실 위치가 뒤죽박죽 섞여있는 등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러다 주머니 속 종이로 접은 판다를 만지작거리자 종이판다가 튀어나와 세연을 도서실까지 안내해준다.
그 일이 있고나서 한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자신이 도서부였다고 얘기하며 찾아온다. 그녀의 이름은 한장휘. 알고보니 졸업생은 맞지만 도서부 학생은 아닌, 괴담수집이 취미인 학생이었다. 학교에 다니는 동생으로부터 도서부 친구들이 방학 때 마주친 종이학 귀신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찾아온 것이었다. 이후,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의 부원 셋과 장휘는 본격적으로 종이학 귀신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알아보던 중 한 블로그에서 이 학교를 졸업한 손녀의 졸업식에 간 블로그 주인이 종이학 귀신에 대해 짧게 언급한 것을 보고 이들은 그 블로거를 찾아간다. 비록 만남으로 특별히 새롭게 알게 된 정보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로부터 이들이 도서실 서고에서 목격한, 세일러복을 입은 여학생 귀신의 정보를 찾을 방법을 듣게 된다. 바로 도서실에 모아온 학교 신문을 보고 어느 시대인지 찾아내는 것. 학교 신문을 찾아보던 이들은 의외의 정보를 알게 된다. 도서실 괴담 속 사당을 홀로 방문한 학생의 정체가 바로 그들의 담임선생님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은 괴담을 모른 척하며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는다.
담임선생님이 떠나고 셋은 서고에서 사진첩을 찾는다. 흩어져 찾다가 발견했는지 묻기 위해 소라를 부르는데, 한 캐비넷은 열려있고 소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소라를 찾다가 문득 캐비넷을 수상하게 여긴 세연은 캐비넷을 당기고 벽에 있는 미닫이문의 홈 같은 것을 발견한다. 모모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에서 소라를 발견한다. 그곳은 셋의 학교였고, 도서실에 있는 물건이 있었다. 그곳의 학생들은 세연이 목격했던 세일러복 같은 교복을 입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들어온 한 여자, 학생들이 선생님이라 부르는 여자는 종이학 귀신이었다. 그 학생들도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다. 유리병마다 종이학을 가득 채워넣고 있었다. 그러다 한 학생이 나타나 '한가하게 종이접기나 하고 있을 때냐' 물었고, 종이접기를 하던 한 친구와 싸움이 붙는다. 그렇게 싸우고 금방 화해를 한 둘은 갈 곳이 있다며 떠나고 교실에 남겨진 셋은 수이라는 친구와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나갔던 두 친구 중 한 명이 다급하게 찾아와 선생님을 데리고 가고, 셋도 그들을 따라간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향하던 다른 건물의 한 교실 창문에는 빨간 빛이 가득하다. 자신이 그곳으로 이끄는 강한 힘을 느끼고 모모와 소라를 두고 혼자 그 교실로 향한 세연은 그대로 기절하고, 깨어나보니 도서실 풍경이 보인다. 겪은 일이 꿈인지 혼란스러워하던 때, 모모가 주머니에서 '1937년. 학교 도서실'이라는 글씨가 적힌 그들의 사진을 꺼낸다. 그들이 다녀온 곳은 과거였던 것이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아 책이라도 읽을까하고 방을 둘러보던 세연은 학교 역사 기록집을 발견하고 꺼내 읽는다. 그리고 그 책으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먼저, 1930년대 일제강점기 그들의 학교에는 거울회라는 비밀 결사가 있었고, 단원들은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은반지를 끼고 다녔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들은 과거에서 봤던 학생들도 손에 은반지를 하나씩 끼고 있었음을 떠올린다. 또 책에는 중일 전쟁 이후 일제의 황민화 정책에 따라 강요되는 신사 참배에 대한 저항으로 학교를 10여년 간 자진 폐교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모모가 도서실을 찾아온 담임선생님에게 과거에서 가져온 사진을 보여주자, 담임선생님은 검은 한복을 입고 있던 담임선생님이 자신의 외할머니라 얘기하며 셋에게 사당이 어떤 곳인지 얘기해준다. 선생님은 사당이 일제강점기, 전쟁 때 군인으로 징병되거나, 공장으로 끌려가서 돌아오기 못한 사람들을 기다리는 장소였다고 얘기한다. 세연은 그제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을 느낀다. 왜 종이학 귀신과 수이가 귀신으로 자신을 찾아왔었는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확신이 선 세연은 모모와 소라를 두고 혼자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돌아간 풍경은 지난 번 붉은 빛이 가득하던 교실이었다. 제복을 입은 남자가 학생들을 다그치고 있고, 남자에게 대답하는 학생들로부터 붉은 빛이 피어나고 있었다. 참고로 세연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서 붉은 기운을 느낀다. 신사참배를 안 오는 것에 대해 화를 내는 남자에게 세연은 자신을 사촌동생이라 소개하고 자신이 가져온 종이학을 보여주며 가을 낭독회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는 학생들의 말에 힘을 실어준다. 선생님에게까지 일본어로 화를 낸 남자는 교실을 떠난다.
세연은 붉은 빛에 대한 의문이 풀렸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려 하는데, 돌아갈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다 혼자 교실에 남아있던 수이와 다시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사당에 가는데 같이 가겠냐는 수이를 따라 간다. 사당에서 수이는 나무패들을 짚으며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오빠, 아버지, 고모, 소꿉친구의 패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곤 종이학을 꺼내 태우며 왜 태우냐고 묻는 세연의 말에 종이학이 기다리고 있으니 돌아와 달라는 말을 전해줄 것 같아서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제비뽑기에 걸려서 공장으로 가게 되었다는 비밀을 얘기한다. 공장으로 가게 되면 어떻게 될지 세연은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말렸지만 수이는 자신도 무섭다고, 그런데 방법이 없다고 눈물 짓는다. 이어서 담임선생님이 종이학을 태우며 기다려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얘기를 하며 어떻게든 돌아오겠다고 말한다. 세연은 수이에게 미래에서 기다리겠다고 답한 후 현재로 돌아오게 된다.
그 일이 있고 세연과 친구들은 종이학을 접어 종종 사당에 들렀다. 방학을 하고 가족과 놀러 떠난 두 친구를 두고 혼자서 사당을 찾은 세연은 한 사람과 마주친다. 손에 수이라는 나무패를 들고 있던 여자는 나이가 든 수이였다. 둘은 서로를 알아본다. 그리고 세연은 사당에서 나와 학교로 달렸다. 학교 정문에는 수이의 담임선생님의 영혼이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자신의 제자와 약속했던 기다림이 끝났기 때문에.
책을 읽은 후
초반부를 읽을 때에만 해도 도서부와 종이접기 클럽이라는 소재를 택한 이유를 짐작하지 못했다. 그런데 다 책을 다 읽고난 후 '도서부종이접기클럽'이어야만 했던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작은 소재와 복선들을 깔끔하게 연결짓고 회수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도서부 친구들이 괴담의 진실을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나는 '이래서 앞에 이 얘기가 있었구나'하며 책 밖의 독자로서 느낄 수 있는 긴밀한 연결성이 하나씩 발견되는 쾌감 또한 느꼈다.
이 책의 주요 화제인 종이학 귀신은 실은 1930년대 후반 일제가 황국신민화 정책을 펼쳐 사상을 억압하고, 중일전쟁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터와 공장 등으로 끌려가던 때 종이학을 접어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과거로 돌아간 세연과 친구들이 만난 수이는 공장으로 끌려가게 되지만 세연과 그녀의 담임선생님의 간절한 바람이 하늘에 닿은 것인지 세월이 흘렀지만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과거에서 수이의 말을 빌려보았을 때 그녀의 가족들, 친구들은 그녀의 간절한 바람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소설 속 수이의 귀환으로 그렇게 떠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독자를 비롯해 많은 독자들은 대리 안도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마음 속에서 종이학을 접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속에서 끝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했던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새긴다. 또한 가슴 속 기다림을 지속하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마음으로 종이학을 접어 태우며 감상을 마친다.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 이종산 - 교보문고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 종이를 접으면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린다 같이 가면 안 돼? 우린 한 팀이잖아.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무모한 일도 용감한 일도 함께하는 종이접기 클럽 멤버들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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